

기사와 공주의 바다
마차에서 내려서자마자 강한 바닷바람이 캐서린의 챙 넓은 모자를 하늘 위로 날렸다. 분홍색의 얇은 리본이 가볍게 나부끼며 손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날아가려는 것을 붙잡은 에이미가 캐서린에게 씩 웃어 보였다. 바지를 입고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그의 뒤 깎아지른 절벽 아래 푸르르고 광활한 바다가 포말을 지었다. 즐거운 여행길과 어울리지 않게 회색빛으로 흐린 하늘이 우중충하다고 생각할 새도 없이 웃음이 나왔다.
“잘했어요, 기사님.”
“칭찬해달라고 한 거 아니야. 정말인데.”
캐서린은 다 안다는 듯 미소 지으며 키가 작은 풀밭을 밟아나갔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그를 쫓은 에이미가 모자를 내밀었으나 고개를 저은 그가 갑자기 에이미를 보곤 짓궂은 얼굴을 했다. 장난스럽게 반짝이는 두 눈동자를 발견한 에이미가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러는데?”
에이미는 캐서린이 재미있는 상상을 할 때마다 윗입술을 살짝 깨무는 버릇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본인은 미처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굳이 지적하면 의식할까 봐 그에 대해서 말한 적은 없었다. 캐서린은 윗입술을 한 번 깨물고서 검지로 흐린 하늘을 가리키며 웃었다.
“햇빛이 없잖아. 써서 뭐 해?”
캐서린의 손가락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본 에이미는 곰곰이 생각하는가 싶더니 곧 알겠다, 탄성을 질렀다. 그는 흰 모자를 머리 위에 쓰고 날아가지 않게 붙잡은 채로 캐서린의 앞으로 가서 마주 섰다. 금방 문제를 맞힌 게 우스웠는지 캐서린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여전히 거센 바람이 그를 지나 에이미에게로 불어닥쳤다. 에이미의 품이 좀 남는 푸른 공단 셔츠와 리본, 금발 머리가 한데 휘날렸다.
“바지나 검과 분홍색 리본이 어울리기도 하는군. 그게 내 드레스와 맞춤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알아?”
캐서린의 시선은 자신의 모자를 쓴 에이미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이를 눈치챈 에이미가 짐짓 으스대었다.
“당신의 기사는 뭐든 안 어울리는 게 없답니다, 공주님. 자랑스러워하셔도 돼요.”
캐서린은 샐쭉하게 눈을 흘기더니 발걸음을 빨리해 에이미를 지나쳤다. 낭랑한 웃음이 종소리처럼 그를 뒤따라왔다. 절벽 끝으로 향하는 캐서린의 남부식 분홍색 드레스가 걸음걸음에 따라 휘날렸다. 차라리 에이미를 따라 바지를 입을 걸 후회하게 되는 세기였다.
그러나 절벽에 우뚝 서서 끝이 없는 수평선 너머를 보는 순간 캐서린은, 그냥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막히지 않는 호흡이 자유로웠다. 주상절리 밑으로 밀어닥치는 거대한 파도를 내려다보는 일이 두려웠지만 바로 그랬기에 더욱 유열(愉悅)하였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높이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것이 이렇게 짜릿할 줄은 몰랐다. 사정없이 얼굴에 들러붙는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마구 모아쥔 캐서린은 바다를 향해 보란 듯이 미소 지었다.
이번 남부 여행의 허가는 아주 쉬웠다. 에이미가 행정관으로 있는 엘제이 직하의 괴물 사육소에 응원차 방문하는 겸 몇 번 가본 적 없는 바다에 오기로 했던 것이다. 비록 주 업무는 황무지 방문이었지만 에이미와 동행하는 이상 어떤 곳을 더 둘러보든 치안 상의 위험은 없었기 때문에 바다 외의 여러 남부 명소 또한 여행한 참이었다. 사실 답답한 왕궁만 아니라면 캐서린은(어디까지나 비유적으로) 어디든 환호성을 지르며 뜀박질 할 수 있었다.
왕궁에서 캐서린은 개인이라기보다는 공주라는 역할로서 ‘기능’했다. 엘제이의 적절한 조언자 역할을 하면서도 왕위 계승에 관심 없다는 기색으로 설설 눈치를 보아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루가 멀다 하고 세를 불려가는 왕자의 매부가 될 수 있을지 궁리하며 자신의 옆자리를 노리는 남자들 사이에서 어떤 가문이 더 도움 될지, 어떤 처세를 해야 위협을 만들지 않거나 되레 위협이 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했다. 바라든 바라지 않았든 왕의 딸로 태어난 이상 그것이 캐서린이라는 왕궁의 톱니바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만약 엘제이의 존재가 없었더라면 좀 더 자유로웠을지도 모른다······. 만면에 환했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왕궁을 벗어나서도 왕궁 생각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다니.
왕위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다. 엘제이는 지금 잘 해내고 있었고 부왕의 마음도 그에게 기울어졌다. 무엇보다, 캐서린에게는 권력욕이 부족했다. 여자라는 것만으로 한계가 결정지어지는 시스템을 부수고 왕이 되고자 할 만큼의 욕망이. 캐서린은 자신이 왕이 된다면 일어날 반향과 혼란을 생각했다. 그러나 왕이 될 수 없으니 공상에 불과했다.
“루시 이모와 함께 올 걸 그랬나?”
어느새 곁에 선 에이미가 중얼거렸다. 여전히 한쪽 손으로 모자를 내리누르고 있었는데, 언제 꽂았는지 챙을 따라 둘린 리본 사이에 희고 노란 꽃송이 몇 개를 장식해놓았다. 캐서린은 탐스럽게 피어난 꽃망울들을 손으로 살짝 건드렸다. 지독히도 잘 어울린다,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황무지를 벗어나도 될 정도로 사육됐단 말이야?”
에이미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루시 이모는 굳이 사육하지 않아도 날 잘 태우니까. 편지에 안 썼던가?”
“안 썼어. 바보야.”
“이런, 캐시. 우리 더 자주 만나야겠어.”
동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인 캐서린은 팔을 타고 기어오르는 한기를 느끼고 두 팔을 감쌌다. 에이미가 혹시 몰라 마차에서 챙겨온 재킷을 펼쳐서 그에게 건넸다. 캐서린이 고동색의 재킷에 팔을 끼우는 동안 에이미가 신이 나서 재잘거렸다.
“황무지로 가면 내게 휴가를 준 ‘괴물들’을 보여줄게. 콜린 이야기는 편지에 썼겠지? 콜린의 상처는 다 나았고, 기네비어는 사나웠던 성격이 놀랍도록 잘 적응했어.”
캐서린은 에이미의 말에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생각보다 길이가 많이 남는 소매를 살짝 흔들어 펄럭였다. 몰랐는데 에이미와의 체격 차가 상당했던 모양이었다.
”아델린은 비행술의 천재야. 물론 와이번이니까 잘 날겠지만, 걔만큼 탑승이 쉬운 애도 없어. 마차에 비교하면, 난 한 번도 안 타봤지만 왕궁 마차의 탑승감이 딱 그렇지 않을까 싶어.”
어처구니없는 말에 캐서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와이번의 탑승감을 왕궁 마차와 함께 논하는 사람은 진실로 에이미 하나뿐일 것이다. 에이미는 왜 웃느냐고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설렘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랑 루시 이모 위에 같이 타보면 재미있을 거야. 루시 이모는 낯도 많이 안 가리거든. 어때, 캐시. 하늘을 날아본 적 있어?”
“그럴 리가. 글쎄, 바보 같은 엘제이가 허락할지 모르겠는데.”
“엘제이 전하가 이런 데서 깐깐하게 구시지는 않을걸. 네가 와이번을 타고 성공적으로 날면 홍보 효과로도 나쁘지 않을 거 아냐? 나의 애-정하는 황무지 직원들의 사기가 좀 오를지도 모르지. 결속력이라거나.”
에이미가 ‘애에정하는’이라며 말을 늘리는 것에서 조롱의 기색을 느낀 캐서린이 작게 웃음 지었다. 에이미는 항상 솔직하고, 쾌활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에이미의 일상에는 활력이 넘쳤다. 그에게서는 캐서린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한 열정과, 그저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 특유의 내음이 났다. 언제나 그런 종류의 달콤함에 눈먼 듯 이끌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캐서린은 자신과 같은 이들이 더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에이미의 맑은 하이톤 목소리가 들리면 본능적으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신이 나서 하는 말에는 무엇이든 동조하게 되고, 무엇이 그렇게 즐거웠는지 함께하고 싶어진다. 완전한 함정에 걸려든 짐승이 된 것처럼 에이미가 손의 목줄을 쥐고 있든 놓고 있든 그에게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좋아. 네 편지 속에서만 보던 일을 실제로 할 수 있게 되다니, 에이미!”
가슴 깊은 곳에서 짙은 열망이 꿈틀거리는 걸 억누르려고 허리를 숙여 근처에 있던 이름 모를 꽃을 한 송이 꺾었다. 항상 캐서린이 하려는 일을 귀신같이 알아채는 에이미가 허리를 숙여 모자를 내밀었다.
덕분에 발끝을 들지 않고도 에이미의 꽃들 사이에 보라색 꽃을 꽂아 넣으며, 캐서린은 모자챙 밑의 녹색 눈과 마주했다. 자신을 보느라 치뜬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는 게 비단 개구쟁이처럼 웃고 있는 저 입매 때문만은 아닐 거라고 캐서린은······.
“캐시?”
에이미가 크게 뜬 눈을 천천히 깜박거리며 의문 어린 목소리를 냈다. 나비가 앉았다 날아간 것처럼 닿은 줄도 모르게 그의 입에 입 맞춘 캐서린이 무언가를 터뜨린 사람 같은 얼굴로 에이미를 바라보았다. 내내 간신히 참아왔던 일을 저질렀는데도 견고한 태도였다.
“그거 알아?”
참을 수 없다면, 그리고 결국 움직이고 말았다면 그다음부터는 뒤돌아보는 것도 후회하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가끔, 아니 자주 네가 내 용기가 돼.”
반면 에이미의 눈동자는 혼란에 휩싸인 채 정처 없이 허공을 맴돌았다. 저렇게 멍청한 표정은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 캐서린이 사랑하는 에이미 엘리스는 선택한 답이 옳든 그르든 항상 자신의 확신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가 바이올라 공녀로부터 시작된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에 직접 부딪히고 남작 작위를 얻는 것을 지켜본 캐서린은 그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비록 친구 레슬리의 도움을 받았다지만 그 모든 일에 에이미라는 요소 하나가 빠졌다면 상황이 지금과 같지 않았으리란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누가 틸빙을 들고 괴물의 숲에 뛰어들고, 험프리 공작가의 면전에 대고 반기를 들어 보일 수 있겠는가?
캐서린이 그 일로 새삼 에이미를 다시 보게 된 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 상황을 신경 쓰지 않은 둘의 친분이 이어진 것이다. 에이미는 증명했을 뿐이다, 기꺼이 이 안온하고도 위험한 감정에 빠져도 좋을 거라고.
“그런데 불안해. 에이미, 우리가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 내가 나의 장애물에 너처럼 용감하게 반항할 수 있을까?”
현실은 그렇다. 에이미를 사랑하는 것조차 캐서린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왕국의 누구든 동성을 사랑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터이나 캐서린은 더욱이 왕실의 여자였고 결혼을 함으로써 엘제이에게 도움이 되어야 했다. 캐서린 자신이기 이전에 공주이고 또 공주이기 이전에 여성인 그의 처지는 얼핏 풍요롭고 고귀해 보이지만, 자유롭고자 함에도, 나아가고자 함에도 남자의 그것보다 몇 배는 더한 제약이 날아드는 그 기저를 살피면 제아무리 신분이 높은들 태생적인 이유에서부터 솟아올라 발목을 죄이는 사슬이 있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생각을 앞지르는 마음이 애닳을 새라 달려가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예정된 섭리처럼 흘러가는 사랑마저 없는 것이라 여기고 눈을 감고 귀를 막아야 한단 말인가?
‘난 그러고 싶지 않다.’
설령 그래야 한다고 해도 이미 틀렸다. 제방 앞에 너무 많은 물이 넘실대고 있었다. 에이미에게 묻는 것은 그저 확인에 불과했다. 모든 결심을 다지고 계획을 세워두었어도 어쩔 수 없이 비져나오는 한 줄기의 불안감을 그가 없애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약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입맛이 썼다.
바람과 파도가 쉴 새 없이 자신의 목소리로 포효해대었고, 지천으로 널린 초목도 바람처럼 파도처럼 쏴아 흔들렸다. 두 사람도 각자의 비명을 지니고 서로를 응시했다.
그러다 문득 에이미는 미친 듯이 휘날리는 캐서린의 얇은 드레스가 우스워 너털웃음을 지었다. 명확한 답을 두고 우리가 뭘 하는 걸까! 비록 하늘은 을씨년스럽지만, 바다의 정경이 이렇게나 멋진데.
“캐시, 우리 멋진 공주님. 넌 가끔 이상한 데서 겁을 낸단 말이야.”
와르르 무너지듯 빛이 터져 나오는 것만 같은 미소에 바람이 섞여들었다. 꽉 붙잡은 모자의 분홍색 리본, 리본을 장식하는 희고 노랗고 보라색인 꽃, 꿀 색의 금발 머리칼, 품이 좀 남는 푸른 공단 셔츠. 무엇 하나 흔들리지 않는 것이 없었는데 에이미는 더없이 분명하고도 단단하게 자리를 지켰다.
“뭐가 문제야? 넌 이제껏 수많은 일을 해내 왔는데, 앞으로 그걸 못하겠어?”
‘그래, 지독하게 잘 어울린다니까.’
캐서린은 처음 절벽 끝에 섰을 때처럼 가뿐한 얼굴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에이미는 언제나 자신의 자리라는 것처럼 그의 빈 공간을 채웠다. 그는 자신도 에이미에게 그런 존재이기를 바랐다. 적어도 사랑 면에서는 확실할 것이다.
“네 앞에만 서면 아무리 크고 두려웠던 것이라도 전부 보잘것없는 문제가 된다니까. 와이번을 타고 날면 이런 느낌일까? 모든 게 작아 보이겠지?”
“맞아. 인제 보니 와이번이 나랑 좀 비슷한 구석이 있었나 봐.”
장난스럽게 대꾸한 에이미가 옆구리에 끼고 있던 검을 빼내 캐서린에게 건넸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은 뒤 모자를 벗어 한 손으로 잡고 품에 안았다. 캐서린을 올려다보며 나머지 한 손을 뻗은 그가 명랑하게 말했다.
“와이번 위에 너 혼자 태울 순 없으니까. 넌 충분히 용감한 사람이지만, 무서울 수도 있고. 이게 뭔지 알지?”
캐서린은 웃음을 참으며 에이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에이미가 손등에 키스하자, 검을 들어 올려 에이미의 양어깨를 한 번씩 두드린 캐서린이 여의치 않아 한 손만 내민 그에게 눕힌 검을 하사하듯 돌려주었다. 방금 막 서임 받은 공주의 기사는 일어서서 검을 도로 검집에 꽂았다.
“자, 이제 난 영원한 너만의 기사야.” 그리고는 모자를 들지 않은 한 손으로 공주의 목덜미를 감싸고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것도 두근거리는 한 번, 웃음 가득한 두 번을 연속으로. 하지만 공주는 이 무엄한 기사의 눈빛에 취해 그를 봐주기로 했다. 굉장히 마음에 드는 장신구를 보았을 때나 엿보이던 기쁨과 흥분이 두 눈동자에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캐시, 난 내가 검을 쓸 줄 알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것은 캐서린도 깊이 동감하는 바였다. 이마를 맞대고, 눈맞춤만으로 모든 것을 전할 수 있다는 것처럼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주위로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이 뒤엉켜 마구 흩날렸다. 잠시 그 상태를 유지하던 에이미가 캐서린에게 한 번 더 입 맞추고 한 발 물러섰다.
그리고 캐서린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가 내뱉듯 말했다.
“돌아가면 엘제이에게 작위를 내려달라고 해야겠어.”
그 말에 에이미는 잠깐 놀라긴 했지만 불가능도, 가벼운 응원조차도 입에 담지 않고 그저 씩 웃었다.
“네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가 생겼다는 것도 꼭 말하고.”
캐서린이 장난스런 말투에 진심을 담아 일렀다.
“엘리스 남작 당신 정말 출세해야 돼.”
“그래, 그래. 널 추위 속에 던져두는 짓도 그만하는 게 좋겠어.”
에이미는 그렇게 대꾸하며 추위로 몸을 떠는 캐서린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그를 마차 쪽으로 이끌었다.
마차로 돌아오는 길에 에이미가 분홍색 리본 사이의 꽃들을 빼내고 캐서린에게 내밀었다. 희고 노란 몇 송이가 보라색의 꽃잎 커다란 한 송이를 둘러싼 작은 꽃다발이었다. 캐서린은 그것을 받아들어 한 번 입 맞추고 말했다.
“모자는 네가 가져.”
에이미가 머리 위에 모자를 눌러썼다.
“좋아. 이제 황무지에 오면 이 모자를 쓴 채로 와이번을 타는 날 볼 수 있을 거야.”
“날려 보내면 가만 안 둘 거야.”
“조심하죠.” 그렇게 말하면서 먼저 마차에 올라탄 에이미가 캐서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캐서린은 기꺼이 그 손을 잡고 마차에 올랐다. 두 사람을 태운 마차가 바람을 가르며 굴렀다. 구름을 가른 노란 햇살이 그 뒤를 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