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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학의 노엘/노엘질리안] 놀이공원 데이트 written by_Le Hui

 

“이번에 피아노 교실 쉬게 되었는데, 뭐할 거야 노엘?”

 

하늘빛을 담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말했다. 그녀의 자수정을 닮은 보랏빛 눈동자는 짙은 금발의, 홍옥을 닮은 눈동자를 향했다.

 

“…글쎄요, 아무래도 피아노 연습을 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 그렇구나, 노엘답네.”

“질리안은 무엇을 할 건가요?”

“흐음, 글쎄. 잘 모르겠어. 일단 우리 집에는 좋은 피아노가 없으니까 연습을 무리일 테고……. 아무래도 부모님 일을 돕지 않을까 싶어.”

 

노엘은 질리안의 대답 속에 힘이 없었다고 느꼈다. 그러자 그녀는 미안함이 느껴졌다. 괜히 그녀의 불우한 사정을 건드렸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 뒤를 따라 나오는 말은 이에 대한 죄책감을 씻기 위해서 충동적인 말일 것이다.

 

“그럼 나랑 놀라요?”

“…응?”

“뭐, 하루쯤 피아노 연습 같은 거 안 해도 상관없겠죠.”

“하지만… 곧 중요한 콩쿠르가 있지 않아, 노엘?”

“내일 하루 연습을 쉰다고 해서 제게는 전혀 지장이 되지 않는답니다.”

 

노엘은 질리안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노엘의 따스한 손이 질리안의 손에 닿는 순간, 그녀의 뺨은 붉게 물들었다. 그런 질리안의 모습을 바라보며 노엘은 그녀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혹시 질리안은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흠… 노엘이랑 같이 하는 거면 뭐든 괜찮을 거 같아.”

“그래도요, 혹시 가보고 싶은 곳이나 먹고 싶은 거, 없으신가요?”

“흠… 사실… 나…….”

 

질리안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노엘을 향해 돌아선 다음 그녀의 두 손을 꼬옥 잡았다.

 

“있잖아, 나, 전부터 노엘과 함께 놀이공원에 가고 싶었어!”

“놀이… 공원이요……?”

“응! 저기 시내에 있는 에버월드 말이야!”

 

놀이공원이라. 사실 노엘은 놀이공원에 딱 한 번 있었다. 늘 바쁘신 부모님들 때문에 노엘의 곁에 있었던 것은 오직 피아노뿐이었다. 어렸을 때는 이것이 서러웠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부러웠지만, 지금은 크게 신경 쓰지 않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7살 그녀의 생일날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과 함께 놀이공원에 다녀왔다. 정말 행복했다. 일이 아닌, 피아노를 치는 자신이 아니라 온전히 저 하나만을 위해서 부모님이 신경 써주시는 거 같아서. 노엘은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그날을 회상했다. 거대한 놀이기구, 반짝이는 조명,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퍼레이드, 예쁜 옷을 입고 화려한 분장을 하고 춤추는 사람들.

 

 

“…좋아요 질리안, 같이 놀이공원에 가요.”

“진짜?”

“네, 내일 아침 9시에 질리안의 집으로 갈게요.”

“응, 나는 좋아!”

 

그때 즐겁게 걷고 있던 두 소녀 앞에 검은색 리무진 한 대가 세웠다. 그리고 운전사가 나와 차의 뒷문을 열었다.

 

“타시죠, 노엘 아가씨.”

“이만 가볼게요, 질리안.”

“응, 노엘 잘 가!”

“조심히 가세요, 질리안.”

 

노엘이 차 안에 들어가자마자 운전사는 문을 닫았고, 이내 운전사도 운전석에 앉은 후 차는 점점 질리안을 멀어졌다. 차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질리안은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라지자 질리안은 전속력으로 집까지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노엘이랑 놀이공원, 놀이공원이라니!’

 

벌써부터 내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질리안은 생각했다.

 

*

 

‘너무 커…….’

 

오늘따라 유난히 심장 소리가 크다고 질리안은 생각했다. 아침 9시 질리안은 집 앞에 서서 노엘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그녀는 푸른색 블라우스와 하늘색과 베이지 체크무늬 A라인 스커트를 입고 하얀 단화를 신고 같은 색깔의 가방을 메고 있었다. 손목에는 하얀 진주를 엮어 만든 팔찌가 걸려있었다. 전체적으로 사랑스럽고 상쾌한 분위기였다.

 

사실 어제 질리안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왜냐하면, 일단 노엘과 처음으로 같이 가는 나들이였기에 자신의 옷장을 털어 옷을 골랐다. 덕분에 동생들의 짜증이 섞인 투정을 들었긴 했지만 말이다. 내일 입을 옷, 신발, 장신구까지 세팅하고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기 위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결국 그녀는 잠을 자지 못했다. 그래서 일찍 일어나 먼저 도시락을 싸고 노엘을 기다리고 있는 줄이었다. 정확히 30분이 되기 10분 전, 검은색 리무지 한 대가 질리안 앞에 섰다. 그리고 차 안에서 운전사가 나와 질리안이 있는 방향의 문을 열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질리안.”

 

차 안에는 노엘이 앉아있었다. 그녀는 연분홍빛 니트와 H라인의 붉은색 스커트를 입고 있었으며, 검은색 목이 긴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목에는 검은색 초커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응, 좋은 아침이야, 노엘.”

 

노엘 옆자리에 앉은 질리안은 안전벨트를 하기 위해서 오른쪽에 있는 벨트를 잡아당겨 끼우려고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벨트를 잘 끼우지 못했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노엘은 잠시 자신의 벨트를 푸르고 질리안 몸쪽을 가로질러 안전벨트를 끼워 넣었다. 그녀의 금빛 머리카락이 질리안의 코를 스쳤다.

 

 

‘향기… 좋다…….’

 

은은한 비누 향이 코끝을 감돌았다. 향기도 노엘답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몸에 닿을 듯 말 듯 했다. 깊은 속 어딘가가 간질거리는 것만 같았다. 벨트 소리가 두 번 나자 운전사는 차를 출발시켰다.

 

“어젯밤에 잠은 잘 잤나요?”

“어… 사실대로 말하자면, 못 잤어.”

“어머, 왜 잠을 못 잤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음, 좀 부끄러운데…….”

 

질리안의 볼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노엘의 귀에 속삭였다.

 

“노엘과의 데이트가 너무 설레서, 그것 때문에 못 잤어.”

 

질리안은 노엘에게서 멀어졌다. 노엘의 얼굴을 살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녀는 긴 머리카락 때문에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에, 노엘? 괜찮아?”

“…….”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 어……?”

“아뇨, 아뇨, 질리안”

 

노엘의 홍안이 질리안을 향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질리안의 하늘빛 머리카락을 천천히,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지금 많이 피곤했겠어요, 그럼 가는 동안이라도 눈 붙이는 게 어때요?”

“아, 괜찮아. 노엘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

“저는 괜찮아요. 여기 어깨에 기대어 자요.”

“괜찮아, 노엘……!”

“어서요.”

“그럼, 잠깐 실례할게…….”

 

잠시 뒤 질리안에게서 새근새근 숨소리만 들렸다. 처음에 질리안이 자신의 어깨에 기대었을 때, 노엘은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질리안이 잠든 것이 확실했지 이후에야 점차 조금씩 숨을 쉬었다. 긴 하늘빛 속눈썹을 보며 노엘은 조용히,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당신에게 빨갛게 물든 제 모습을 어떻게 보여줘요, 부끄럽단 말이에요.”

 

*

 

“진짜 재밌다, 노엘!”

“하하…….”

 

놀이공원에 도착한 둘은 정말 신나게 놀이기구를 탔다. 범퍼카, 후룸라이드 등 외에도 많은 놀이기구를 탔으며, 조금 전에 그들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놀이기구… 정말 잘 타시네요, 질리안…….”

“아아, 부모님 대신에 동생들이랑 같이 타다 보니… 타는 실력이 늘었어!”

 

조금 전 롤러코스터를 질리안은 정말 잘 탔다. 한 번도 찡그리지 않은 채 늘 싱글벙글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소리를 지르는 것도 무서워서 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분위기에 취해 지르는 거 같았다. 반면에 노엘은 대부분을 눈감고 탔다. 떨어지는 느낌, 그녀는 그것이 너무나도 소름 돋았다.

 

“배고프지 않아, 노엘?”

“이제 슬슬 점심때니까요, 어디 좋은 데에서 점심 먹죠.”

 

“좋아! 나 도시락 싸 왔어!”

 

대부분 자리는 사람들로 꽉 찼으나 다행히 둘은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었다. 질리안은 가방에서 도시락통을 꺼냈다. 2층 노란색 도시락을 하나씩 분리하여 식탁 위에 두었다. 한 도시락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샌드위치 4조각이 들어있었다.

 

“와, 샌드위치……!”

“응, 아침에 엄마랑 함께 만들었어.”

“수고 많았어요, 질리안. 잘 먹을게요.”

“응, 많이 먹어 노엘. 이쪽에는 과일 싸 왔어!”

 

노엘은 샌드위치 하나를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양상추가 아삭거리고 토마토즙이 마요네즈와 케첩 소스와 썩혀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햄의 기름과 달걀노른자의 고소함, 체더 치즈의 꾸덕꾸덕하고 느끼함이 따라왔다.

 

“노엘, 맛있어?”

 

질리안이 해맑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실 말하자면, 노엘 본인이 집에 먹는 것보다 재료가 좋지 않았다. 토마토는 푸석했고 상추는 시들했다. 그리고 이런 인공적인 소스는 그녀는 잘 먹지 않았다. 오로지 유기농, 친환경적인 재료로만 만든 음식만 먹었다. 하지만 노엘은 감히 말할 수 있었다.

 

“…네, 맛있어요.”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 이 샌드위치가 더 맛있을 거라고 말이다.

 

“다행이다! 노엘은 이런 거 잘 안 먹어서 입맛에 안 맞을까 걱정했거든.”

“아니에요, 정말 맛있어요.”

“헤헤, 고마워, 노엘.”

 

그러고 나서 질리안 본인도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질리안의 먹는 속도가 살짝 빨라 둘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샌드위치를 다 먹어 치웠다. 이제 후식으로 과일을 먹기 위해서 그녀는 가방에서 작은 포크를 꺼냈다.

 

“자, 노엘! 여기 포크 받아.”

“고마워요.”

 

딸기, 청포도, 오렌지, 바나나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노엘은 청포도를 찍어 입안에 넣었다. 포도의 달달한 과즙이 입 안 가들을 채웠다.

 

“어, 노엘. 입가에 소스가 묻었어.”

“아 정말요? 어디요?”

“여기, 여기.”

 

노엘은 소스를 닦아내려고 했으나 번번이 미묘한 차이로 소스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질리안은 처음에 열심히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노엘이 좀처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그래서 그녀가 한 행동은 정말로 충동적이었다. 질리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리고 손을 뻗어 노엘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부드럽게 닦아냈다.

 

“이제 됐다.”

 

질리안의 밝은 얼굴로 다시 제자리에 앉았고, 노엘은 그녀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고 생각했다. 손에 묻은 소스를 휴지로 닦은 후 그녀는 딸기를 입에 넣었다. 그런 모습을 노엘은 계속 바라보았다.

 

 

“노엘, 뭐해? 얼른 먹자.”

“네? 아, 네.”

 

노엘은 다시 과일을 먹기 시작했다. 열심히 먹는 모습이 다람쥐같다고 질리안은 생각했다.

 

‘아까 그 모습도 귀여웠는데.’

 

자신을 멍하니, 핑크빛으로 물든 뺨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모습. 항상 도도하고 우아한 표정을 짓던 그녀였다. 의외의 모습을 발견한 거 같아 그녀의 가슴 속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

 

“오늘 재밌었어, 노엘.”

 

늦은 밤, 한 검은 리무진이 어느 집 앞에 세웠다. 질리안은 벨트를 풀고 노엘에게 가볍게 말을 걸었다.

 

“그러게요, 정말 재밌었어요.”

“응, 다음에도 피아노 교실 쉰다면 같이 놀래?”

“그래요, 뭐, 하고 싶은 거 있나봐요?”

“네, 같이 시내에도 돌아다녀보고 싶고, 영화나 연극도 보고 싶어!”

“좋아요, 꼭 같이해요.”

 

질리안은 자동차 문을 열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뺨을 스쳤다. 치에 내린 질리안은 뒤를 돌아 노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노엘을 향해 손을 뻗었고, 노엘은 그 손을 잡았다.

 

“그러면 잘 가, 노엘.”

“네, 질리안. 내일 피아노 교실에서 봐요.”

 

손을 놓고 이 말을 끝으로 차의 문이 닫혔다. 그리고 차가 출발했다. 평소와 달리 어두운 밤이었지만 질리안은 차가 사라질 때까지 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아직도 노엘의 손의 온기 자신의 손을 반대편 손으로 소중히 잡았다. 같은 시각, 노엘도 질리안과 맞잡은 손을 꼭 잡았다. 그들 모두 뺨이 예쁘게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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